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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애의 참견이란 프로그램을 보는데 재밌는 사연이 있었다.

 

자기 스스로 선택을 못하는 선택장애가 있는 29세의 남자친구와 만나고 있는 28세 여성분이 보낸 사연이었다.

 

아픈데 병원을 갈지 말지, 출장을 가는데 경로 2개 중 어느 경로가 좋을지, 회사를 다니다가 경찰공무원을 준비하고 싶어졌는데 다니면서 할지 그만두고 준비할지 등등..

 

여기서 더 문제인 것은 여자친구의 조언으로 선택을 해놓고 결과가 안좋으면 여자친구 탓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연을 보면서 바로 드는 생각은 '남자가 참 어린애 같다'라는 것이었다.

마치 어린애들이 뭔가 잘 안되면 '이게 다 엄마때문이야!'라고 하는 느낌?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출항과 동시에 사나운 폭풍에 밀려다니다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같은 자리를 빙빙 표류했다고 해서, 그 선원을 긴 항해를 마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긴 항해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을 수면 위에 떠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노년의 무성한 백발과 깊은 주름을 보고 그가 오랜 인생을 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백발의 노인은 오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래 생존한 것일지도 모른다."

 

세네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외력에 의해서 표류하는 인생이 아닌, 역경을 뚫고 목표를 갖고 항해하며 성장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것

 

 

 

 

나이가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내 선택, 내뱉은 말 그리고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이것이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많이 느낀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가장으로서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

직장에서 점점 아랫사람들이 많아지고, 내 선택에 의해 부하직원들의 생계가 좌지우지 된다는 것.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그것에 책임진다는 것은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의 선택 하나하나에 많은 것들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내 선택은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익숙한 것들만 고집하게 되고 도전적인 일은 지양하게 된다.

선택을 회피하게 되고, 관성에 의해 내가 살아왔던 대로 그냥 현상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회피할수록 내 발목을 붙잡는 것들

 

살아가다보면 중요하지만 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어렸을 때 소심했던 나에겐 사람들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일이 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영어 공부가 싫었다.

 

내가 살면서 깨달은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회피하면 결국엔 내 발목을 붙잡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 때의 나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받아들이고, 조별 과제에서 발표할 일이 있으면 나서서 발표를 하고,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외국인 교환학생들의 도우미를 하기도 하며 불편한 것에 익숙해 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한살이라도 젊을 때, 내 선택에 의해 잃을 것들이 적을 때, 더 과감한 도전을 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만약 젊을 때부터 안정된 것만 찾고, 내 선택에 대한 결과가 두려워 선택을 회피한다면, 정작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엔 아무 선택도 못하게 되지 않을까?

 

부디 미래의 나는 선택을 회피하거나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아닌 매순간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항상 성장해나가는 어른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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